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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이모저모

"이시대 영원한 오빠 나훈아 "사건사고 그리고..

by 강현아빠 2020.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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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 

가수 나훈아

본명 최홍기

출생 1947년생

나훈아 나이 74세 (20년기준)

출생지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본관 해주 최씨

가족 자녀 슬하 1남 1녀,


◆ 나훈아 사건사고 정리 

 

 

 

1.나훈아 피습사건 

1970년 나훈아 vs 남진은 가요계의 라이벌이여서 팬들과의 신경전도 아주 대단했다고 합니다. 

요즘시대로 치면 hot vs 젝키 핑클 vs ses 모이런 느낌 아니였을까요? 

그러던중 1972년 7월4일 공연중이던 나훈아씨를 어떤남자가 깨진 유리병 파편으로 습겹하는 사건 발생하여

당시에 나훈아씨는  남진씨가 사주를 해 일어났다고 주장하였으나 남진씨 측에서 부인하여 사건은 일단락 

되었으나 가해자 남성이 3년후 남진씨 피습,1980년에는 집에 불을 지르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2.나훈아 신체훼손사건 

이사건은 저도 성인이되서 접한 사건이라 그당시 기억으로 모여배우랑 연인이였는데 일본 야쿠자가 

신체일부를 훼손하였다고 하여 기자회견에서 보여주면 믿으시겠냐고 했던 사건.. 


◆ 나훈아 결혼이야기 

 

정수경 : 19852016

김지미 : 19761982

이숙희 : 19731975년

 

나훈아는 입대 직전에 배우 고은아의 사촌인 이숙희와 결혼, 전역을 앞둔 1975년에 이혼, 두 번째 결혼은 '세기의 결혼'이라 일컬어지는 여배우 김지미와의 만남이다. 하지만 이 역시 오래가지는 못했다. 나훈아가 가요계에 복귀하면서 두 사람의 사이는 멀어졌고 1982년 이혼장에 도장을 찍었다. 나훈아는 훗날 두 번째 배우 김지미에 대해 "나를 남자로 만들어준 사람"이라고 회고했다.

 

김지미랑 1982년 이혼당시 위자료 명목으로 자기 전재산을 김지미에게 넘기면서 "남자는 돈이 없어도 살아갈수 있지만

여자는 혼자 살아가려면 반듯이 돈이 꼭필요하다" 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나훈아의 세 번째 여자는 14세 연하의 후배 여가수 정수경이다. 이들은 결혼 후 1남1녀를 낳았다. 하지만 2011년 정수경이 이혼 및 재산 분할 청구 소송을 제기하며서 지루한 법정공방이 시작됐다.  결국 2016년 10월 법원은 이혼과 함께 12억원을 위자료로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정 씨는 MBC '리얼스토리 눈'에 출연해 2007년 이후 나훈아와 지속적인 연락을 하지 못했다며 이혼 사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 명절에 어머니가 정수경씨를 보고 사랑이라는 노래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료좀 찾아 봤습니다. 

어머니말로는 나이도 어리고 보기만해도  정말 사랑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탄생한 곡이 "사랑"입니다.

가사만 봐도 나훈아씨의 마음을 알수 있었을거 같습니다.

보기만 해도 얼마나 사랑했었을까 하는 . 가사를 보면 한번더 생각이 드네요. 

 

 

 

 

-사랑 가사 -


이세상에 하나밖에 둘도 없는 내연인아

보고 또 보고 또 쳐다봐도 싫지 않은 내사랑아

비내리는 여름날에 네 가슴의 우산이되고

눈 내리는 겨울날에 네 가슴의 불이 되리라

온세상을 다준다해도 바꿀수 없는 내연인아

잠시라도  떨어져선 못 살것 같은 내사랑아

행여 당신 외로울땐 내가 당신 친구가 되고

행여 당신 우울할때 내가 당신 웃음 주리라

이세상에 하나밖에 둘도 없는 내연인아

보고 또 보고 또 쳐다봐도 싫지않은 내사랑아

 

-아래 글은 모언론 기사에서 정수경씨가 인터뷰한 기사입니다. -

 

신혼생활은 매우 행복했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내게 잘했어요. 나를 위해 만든 노래라며 음악을 들려주기도 했던 로맨틱한 남편이었어요. ‘사랑’이라는 노래가 그렇게 만들어진 곡이에요. 부부니까 종종 부부싸움을 하기도 했지만 크게 싸워본 적은 없어요. 남편이 워낙 불같은 성격이라 화를 내면 내가 그냥 참고 받아주곤 했죠.

 

 

 


그밖에 이야기 

이건희 회장 나훈아 공연요청 이야기

 

1990년 신라호텔에서 개최된 삼성 고위임원 파티에 이건희 회장이 나훈아의 공연을 요청 , 당시금액이 3천만원이였는데

노래 몇곡 불르고 3천만원이면 거금인데 나훈아는 이를 단호히 거부하였다 

 

이때 삼성 비서실이 총출동 하여 나훈아를 설득하려고 하였지만 이런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나는 대중가수이다 따라서 나는 대중앞에서만 노래를 부르지 이회장이 돈몇푼 더 준다고 달려가 노래를 부를

나훈아가 아니다 만약 꼭 내노래를 듣고 싶으면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 할때 공연티켓을 끊어 들어오길 바란다"

 

결국 나훈아를 설득하지 못하여. 삼성에서 초청한 가수중 유일하게 거부한 가수라 합니다. 

 

김정은 평양공연때 나훈아 초청?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7회 여기자포럼에 참석한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평양공연 당시 김 위원장과 나눈 대화 중 김 위원장이 나훈아를 물었던 일화를 공개했다.

당시 김 위원장은 "오라고 요구했던 배우들이 오지 않았습니까, 나훈아라든가"라고 했다. 이에 도 장관이 "스케줄이 있었다"고 함께 오지 못한 이유를 알리자 김 위원장은 잘 이해되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는 다고 합니다 "

 

 

 

 

▶김정남의  "고향으로 가는배" 

 

김정은의 형 김정남이 타국에서 고향을 그리워 하면 나훈아의 "고향으로 가는배" 

노래를 노래방에서 10번 불렀다고 합니다. 

 

 

 

수상경력 

 

-KBS음악대상(72년), MBC10대가수 특별가수상(81년), 대한민국연예예술상 특별상(제3회,96년), 건국이후가수베스트50(3위)(조선일보,98년), 98MBC가요제전(30세이상의국민이뽑은10대가수,98년)
-취입곡 사랑은눈물의씨앗, 물레방아도는데, 강촌에살고싶네, 너와나의고향, 대니보이, 머나먼고향, 울긴왜울어, 고향역, 영영, 해변의여인, 18세순이, 남행열차, 갈무리, 잡초, 무시로, 사랑, 건배 등

데뷔이후 2500여곡을 불렀고 지금까지 250여장의 앨범을 출시했으며 그 가운데 히트곡만도 무려 54곡이나 되는 가수이다. 한국대중음악사에서 많은 페이지를 차지할 수밖에 없는 대형가수가 <나훈아>는 60년대에 라이벌<남진>과 함께 트로트의 전성시대를 열었던 주인공으로 데뷔35여년이 돼가는 현재까지도 그 인기는 변함이 없다. 중년층의 서태지라 할만큼 매번 파격적으로 또 새롭게 팬들을 찾은 것이 그 인기비결일것이다. 사실 그의 노래 2천 5백곡 중 8백곡이상이 자작곡이고, 오가는 승용차 안에서 주로 작업을 하는 성실파 가수이기도 하다.

 

히트곡 

 

"천리길", "사랑은 눈물의 씨앗", "임 그리워" ,
"두줄기의 눈물", "잊을수가 있을까", " 강촌에 살고싶네", "바보 같은 사나이", "머나먼 고향", "가지마오"
"물레방아 도는데", "녹슬은 기찻길", "고향역", "후회"
"너와나의 고향", "해변의 여인", "산마을 처녀 " ,
"애정이 꽃피던 시절", "잊을수 없는 그대", "정이란", ,
"고향의 이쁜이", "찻집의 고독", "울긴 왜 울어",
"청춘을돌려다오, "잡초", "건배", "내삶을 눈물로 채워도"
"아담과 이브처럼" 등 120 여곡 이상.
※ 히트곡 수에 있어서도 세계 최다임이 공인

*앨범발표 수 : 약 200장 이상.
*취입곡수 : 2600여곡 이상 (이중 800여곡이 자작곡)
*별명 : "트롯트의 살아있는 전설", "트롯트의 황제",
"대한민국 나훈아", "가요계의 살아있는 전설",
"가요계의 대부" 등
*존경하는 인물 : 막사이사이
*존경하는 선배가수 : 남인수
*좌우명 : "최선을 다한다"
*매력포인트 : "호소력 짙은 가창력" "짙은 눈썹"
"살며시 깨무는 앞니" 등

 


◆나훈아선생님 사진모음 

 

 

 

 

나훈아선생님 앞으로 활동 오래오래하시고, 멋진무대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나훈아 선생님 신곡 "테스형"

 

 

이번에 새로 계정을 만들었습니다. 첫이야기로 나훈아 선생님의 이야기를 작성했는데요. 

더 좋고 알찬내용으로 앞으로 계속 블로그를 운영할 계획이니 자주 방문 부탁드립니다. 

글이 알차고 좋으셨다면 좋아요랑 공유 많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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